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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석유화학 리밸런싱)②구조조정 기로…일본 사례서 해법 찾을까
이 기사는 2025년 09월 17일 16:3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 과잉, 중국발 저가 공세, 고유가와 환율 불안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가운데 롯데케미칼과 현대케미칼의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 시도가 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지난 40년간 세 차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고부가가치와 글로벌 확장을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재편해왔다. 한국 역시 이를 벤치마킹하되 우리 산업 환경에 맞는 한국형 구조조정 모델을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현주소와 과제, 해외 사례 비교, 제도적 개선책을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구조조정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발 저가 공세, 그리고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 하락이 장기화되면서 단순한 설비 통폐합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일본 석유화학 산업이 지난 40여 년간 세 차례 구조조정을 거치며 경쟁력을 회복한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구조조정 사례에서 장점과 단점을 잘 가려내 최적의 해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사진=롯데케미칼)
 
국내 NCC 가동률 70% 안팎까지 하락
 
1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서 공급 과잉이 장기화되고 있으며, 특히 중국 업체들이 저가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NCC 가동률이 70% 안팎으로 떨어진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아예 가동을 중단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노후 설비를 줄이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40년간 세 차례의 구조조정을 거친 일본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설비 축소에 그치지 않고 전자재료, 이차전지 소재, 친환경 플라스틱 등 첨단 소재 중심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첫 번째 구조조정은 1980년대에 단행됐다. 당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오일쇼크 여파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급격히 둔화하자 일본 정부는 강력한 개입에 나섰다. 노후화된 설비를 폐쇄하고 과잉설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에틸렌 설비 감축이 꼽힌다. 정부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설비를 의무적으로 폐쇄하도록 압박했다. 그 결과 일본 석유화학 산업은 단기간에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생산성 회복에 성공했지만, 시장 자율성이 크게 훼손됐고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대거 퇴출당했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보다 자율적인 방식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산업재생법’을 도입해 기업 간 인수합병(M&A)과 합작사를 통한 통합을 지원한 것이다. 이 시기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은 대규모 합병을 통해 사업 규모를 키우고, 범용 제품에서 벗어나 고기능성 소재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자동차, 전자, 정보통신 산업에서 수요가 늘어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고성능 합성수지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정부가 직접 설비를 줄이도록 강제하기보다는 제도적 틀을 제공하고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는 점에서 첫 번째 구조조정과 성격이 달랐다.
 
2000년대 이후에는 규제 완화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통합과 글로벌 확장이 이뤄졌다. 일본 정부는 석유화학 콤비나트(석유화학 공업단지) 간 통합을 유도하고, 환경 규제와 세제 혜택을 조정하면서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동, 동남아 등 해외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했고,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일본의 구조조정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 배경이다.
 
 
일본 구조조정 사례장단점 '뚜렷'
 
이러한 일본 사례의 장점은 분명하다. △범용제품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소재로 전환했다는 점 △국내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확장에 성공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초기 정부 주도의 강압적 구조조정은 기업 자율성을 해쳤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 시장에서 밀려나 산업 생태계가 취약해졌다는 비판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이 일본의 이 같은 경험에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가 향후 산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삼일회계법인 경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일본 석유화학 구조조정 사례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의 경험을 단순히 답습하기보다 제도적 한계를 먼저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한국의 ‘기업활력법(원샷법)’이 형식상 일본의 산업재생법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과잉 설비 매각·합병 시 발생하는 세금 전액 감면, 공정거래 규제의 조건부 영구 완화, 채권자 자동동의 제도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반면, 한국은 세제 혜택이 대부분 ‘이연’에 그치고 규제 유예도 3~5년 한시적 수준에 머물러 기업이 장기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매수청구권 부담과 지주회사 규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들에게 여전히 발목을 잡는 요소로 꼽혔다. 보고서는 한국이 향후 구조조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금 감면과 금융 지원 등 직접적 비용 절감 장치 강화 △규제 일시 유예가 아닌 성과 달성 시 영구 면제 제도 도입 △노조·지자체와의 갈등을 조정할 컨트롤타워 구축 등 구체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