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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0일 14: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보험산업은 저성장 기조와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수익 모델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시니어케어' 사업은 보험업계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보험사는 보장성보험 판매와 자산운용 이익에 의존하는 데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IB토마토>는 일본·독일·프랑스·싱가포르를 직접 찾아 각국의 시니어케어 산업 현황을 살펴보고, 국내 보험시장이 참고할 수 있는 전략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최윤석 기자] 노령화로 인해 우리나라도 요양사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시장 규모 자체는 여전히 크지 않다. 요양에 대한 낮은 인식, 각종 규제, 노후 대비 부족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돌봄에서 자립으로'의 전환을 통해 요양산업을 하나의 전문 서비스업으로 발전시켰다.
이에 <IB토마토>는 일본 손해보험 1위 솜포홀딩스의 요양 자회사 '솜포케어'를 직접 찾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요양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호텔 같은 요양원, '라비에르 하네다'
솜포케어는 솜포홀딩스 계열사로,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내 입소자는 8만5000명이 넘고, 종업원 수도 2만5000명에 달한다.
시설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재택 요양을 추구하는 '솜포의 집',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비에르(Laviere)',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세운 '라비에르 그랑(Laviere Gran)'이다. 본지 취재진은 중간 등급인 라비에르 하네다를 찾았다.
도쿄 오타구 주택가에 위치한 라비에르 하네다는 외관부터 호텔을 연상케 한다. 관계자는 "처음부터 '요양원 같지 않은 공간'을 목표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물 외관만 보면 고급 주택으로 착각할 만큼 세련된 분위기다.
입소자들은 직접 걷고, 옷을 입고, 식사한다. 요양사들은 정해진 역할에만 집중하며 불필요한 개입을 자제한다. 이는 '인간 존중'과 '자립 지원'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솜포케어의 경영이념에 따른 것이다.
라비에르 하네다 외관(사진=IB토마토)
"직접 걷고, 입고, 먹는다"
라비에르 하네다에서 만난 나카가키(中垣) 씨는 올해 102세다. 그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방에서 스스로 걸어나왔고, 인터뷰를 마친 뒤 직접 취재진을 배웅했다.
그는 "입소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결정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 같은 분위기에 개인실도 있다"라며 “지난해까진 그림을 그렸는데 최근에는 피아노를 새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솜포케어의 자립 지원 철학은 단순한 기업 이념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제도 개편에서 비롯됐다.
라비에르 하네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나카가키씨(사진=IB토마토)
일본은 2015년 '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하고 2016년부터 예방 중심 돌봄 제도를 본격 시행했다. 단순히 목욕과 식사 보조에 그치지 않고, 생활 전반에서 자립을 돕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입소자들이 요리·청소에 직접 참여하고 스스로 문을 여닫거나 걷는 활동을 통해 근력 저하를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는 요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으로 이어졌다. 과거 가족 중심의 봉사 개념에 머물렀던 요양이 이제는 전문 노동 서비스로 자리 잡은 것이다.
취재진과 동행한 솜포케어 국제전략부 사이토 가츠히로 담당(Senior Leader)은 "요양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기까지 제도 개선과 문화적인 정착 등 오랜 시간이 걸렸다"라며 "과거엔 요양이 봉사라는 개념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일반 회사원들처럼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더 가까워졌다"라고 설명했다.
요양사들의 도움 없이 직접 걷는 나카가키씨(사진=IB토마토)
젊은 요양사들이 만든 변화
라비에르 하네다의 또 다른 특징은 '젊은 요양사'들이다. 현장 근무자의 상당수가 30대이며, 원장은 30대 후반, 부원장은 30대 초반이다. 국내 요양사 평균 연령(50~70대)과 비교하면 세대 차이가 크다.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한국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자의 평균 연령은 남성 58.5세, 여성 53.9세로 평균 54.5세다. 반면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요양사 자격 취득 연령은 평균 35세 내외로, 30세 이하 비중이 48.2%에 달한다.
하지만 젊다고 해서 경력이 짧은 것은 아니다. 라비에르 하네다의 원장과 부원장은 모두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베테랑이다.
솜포케어 라비에르 하네다를 총괄하는 이이츠카 히로키(飯塚 大季) 원장은 "3년간 국가 공인 자격증에 도전해 합격한 이후 현재 라비에르 하네다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라며 "임금도 충분히 높은 편”이라고 귀뜸했다. 이어 “요양사들도 개인별 평가가 이뤄지고 있고, 능력에 따라 관리자로 승진할 기회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이츠카 히로키 라비에르 하네다 원장(왼쪽)과 부원장(오른쪽)(사진=IB토마토)
"돌봄이 아니라 산업"…M&A로 커진 요양시장
라비에르 하네다에는 100명의 입소자를 위해 26명의 간병인과 5명의 간호사가 근무한다. 인력보다 중요한 것은 쾌적한 환경과 자립 지원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시설 이용료는 만만치 않다. '솜포의 집'은 월 25만엔 안팎, '라비에르'는 25만~30만엔, '라비에르 하네다'는 32만3074엔~33만3074엔 수준이다. 최고급 '라비에르 그랑'은 월 50만엔을 웃돈다. 대부분 입소자는 연금, 저축, 혹은 주택 매각 자금으로 비용을 마련하며 평균 입소 연령은 80세 전후다.
일본 요양업계는 최근 1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며 대기업과 사모펀드 자금이 몰리고 있다. M&A 건수는 2012년 12건에서 2022년 48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고, 지난해에도 40건이 진행됐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대기업과 PEF(사모펀드)의 인수가 특히 활발하다. MBK파트너스도 2021년 이후 3건의 요양시설 인수를 단행했다.
솜포케어 관계자는 "요양 수요가 커지면서 자본이 유입되고, 자본이 들어오니 공급도 확대되는 구조"라며 "규모가 커질수록 이익률이 높아지는 만큼 M&A를 통한 성장 전략이 일반화됐다"고 설명했다.
솜포케어 본사가 위치한 건물 전경(사진=IB토마토)
"제도 없인 성장도 없다"…한국 시장의 과제
한국 요양사업이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솜포케어 해외사업부 안도 시게루 이사는 "한국은 문화적·경제적·제도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매월 요양비를 납부하는 데 대한 문화적 거부감 △사업주가 토지를 소유해야 하는 제도적 부담 △낙상 사고 책임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이 중 토지 소유 규제는 최근 완화됐다. 지난해 법 개정으로 토지·건물 사용권만으로도 실버타운 개발이 가능해졌고, 리츠 도입과 세제 완화로 개발 문턱도 낮아졌다. 그러나 낙상 사고와 관련한 법적 책임 구조는 여전히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도 고령화 문제는 국가적 과제"라며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요양사업과 관련해 솜포케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건너오지만,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솜포케어가 성공한 노하우는 전해줄 수 있지만, 제도는 국가와 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안도 시게루 솜포케어 이사(사진=IB토마토)
일본의 요양시장 구조도 특이하다. 대기업의 점유율은 3% 남짓이며, 요양 관련 법인은 6만 곳에 달한다. 솜포케어의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이지만 입소자만 8만5000명에 이른다.
안도 이사는 "손해보험 시장의 경우 대기업의 점유율은 85% 정도이고 법인 수가 57곳인 데 반해 요양사업 법인은 1곳의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곳만 3만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개인이 직접 요양시설을 운영하기도 하고, 그만큼 문화적으로 요양시설이 일반적이며 사업적으로도 시장 진입장벽이 낮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성장 요인은 연금제도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평균 연금 수령액은 2023년 기준 매월 평균 14만4982엔으로, 한국의 평균 69만5000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공적연금이 고령자 가구 소득의 60%를 차지하며 요양비 지불의 기반이 된다.
솜포케어 내부(사진=IB토마토)
결국 일본은 제도 개편을 통해 예방 중심 돌봄을 정착시켰고, 자립이라는 문화를 뿌리내렸다. 연금과 저축이 뒷받침되면서 요양산업은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사이토 가츠히로 국제전략부 부장은 "한국을 오고가며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낙상 사고로,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겪게 되는 문제 중 하나다"라며 "일본의 요양원은 대부분 자기 책임에 대한 범위가 명확하고, 사전에 보호자들과 논의를 통해 자기 책임 범위를 한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걷다가 넘어져도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개인으로 한정하기로 보호자와 사전에 합의했다면, 요양원의 책임은 없는데 한국은 요양원 책임"이라며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의 요양산업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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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