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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4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벤처투자에서 숫자는 결과를 말해주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결국 사람에서 출발한다. 이승문 HB인베스트먼트 투자3본부장은 그 과정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따라가는 투자자다. 회계사 출신으로 숫자에 익숙하지만, 그의 투자 판단은 언제나 기업 대표와의 대화, 현장의 공기에서 시작된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투자 대상 기업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본다.
변수와 불확실성이 뒤엉킨 벤처투자 시장에서 숫자와 사람 모두에 충분한 시간을 들일수록 더 나은 투자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014년 HB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한 이후 이 본부장은 데이터, 기후, 화장품, 온라인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상장과 회수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발굴해왔다. 최근에는 달바글로벌에 대한 초기 투자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설립 25년 차를 맞은 벤처캐피탈 1세대
HB인베스트먼트(440290)에서 그는 '원팀맨'으로서 신규 펀드 결성과 포트폴리오 확장을 이끌고 있다. <IB토마토>는 이승문 투자3본부장을 만나 그의 투자 철학과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승문 HB인베스트먼트 투자 3본부장(사진=HB인베스트먼트)
다음은 이 본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올해 HB인베스트먼트의 주요 성과와 포트폴리오 현황은
△가장 큰 성과는 신규 펀드 결성이다. 올해 말 결성총회를 마친 ‘HB러닝메이트투자조합’이 대표적이다. 대표출자자(앵커 LP)로는 산업은행이 약 350억원을 출자했고, 우정사업본부, 농협, IBK그룹(증권, 기업은행 등)도 참여했다.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참여 결정지으면서 1400억원 규모로 최종 결성이 확정됐다. 이후 멀티 클로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펀드는 HB인베스트먼트 역사상 최대 규모다. 절대 금액 기준으로도 1000억원대 펀드 결성은 회사 설립 이후 처음이다. 직전 최대 규모 펀드는 2017년 결성된 HB청년창업투자조합으로 약 750억원 수준이었다.
HB인베스트먼트의 현재 운용자산(AUM)은 약 7000억원 수준이다. AUM이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큰 규모의 투자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내년에서 내후년쯤 AUM 1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점적으로 맡고 있는 업무 영역과 그간 주력해 온 투자 분야는
△특정 산업에 국한하기보다는 성장성과 회수 가능성이 분명한 기업을 특히 눈여겨 본다. 플랫폼, 데이터, 기후, 소비재 등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산업에 집중하느냐보다 결국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등 엑시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다.
-회계사로 커리어를 시작해 2014년 HB인베스트먼트로 옮기며 VC 업계에 뛰어들었다. 안정적인 회계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벤처캐피탈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있다면
△회계법인은 규모도 있고 안정적이지만, 우스갯소리로 인공지능(AI)이 나오면 사라질 수도 있는 직업이라는 인식 속에서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량 등 진로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
회계법인 근무 당시인 2010~2011년쯤 모태펀드와 창업투자사 감사를 맡으며 심사역들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VC 업계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이후 2014년 HB인베스트먼트에 합류했다. 당시 HB인베스트먼트는 그로스에쿼티(PEF) 본부와 VC 본부 성격이 혼합된 구조였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앞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적절히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VC 업계에 들어오게 됐다.
-투자3본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정재현 이사와 윤여준 팀장은 모두 전기전자공학 전공이자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본부의 기술 분석 역량이나 투자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치나
△함께 본부를 이끄는 정재현 이사와 윤여준 팀장은 모두 전기전자공학 전공에 삼성전자 출신으로 반도체와 AI 산업을 10년 이상 경험해 기술적 안목이 뛰어나다. 산업 이해도는 물론 실제 대기업에서 PoC(기술검증)가 이뤄지고 있는지 납품 구조가 가능한지 등을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대기업 연구원 출신 창업자들이 많아 업계 레퍼런스와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의 성향과 내부 리스크를 점검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파킹클라우드, 크라우드웍스, 케이웨더 등 플랫폼 기업 비중이 눈에 띈다. 플랫폼 기반 비즈니스를 높게 평가한 배경이 있나
△플랫폼 자체를 선호한다기보다는 해당 산업에서 상장 1호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한국거래소는 특정 산업에서 첫 상장 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추후 투자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크라우드웍스는 데이터 라벨링 분야 상장 1호 기업이었고, 케이웨더 역시 민간 기상 기업 1호 사례다. 파킹클라우드도 무인 주차 관제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었다. 결국 플랫폼 여부보다는 해당 산업의 ‘퍼스트 무버’인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투자 판단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기준은
△매출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초기 단계에 진입한 기업일수록 실제 영업처를 만나고 있는지 기술 개발과 영업이 병행되고 있는지를 살핀다. 또 매출이 확대됐을 때 이익이 남는 구조인지가 중요하다. 마진율이 구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지 동종 업계와 비교해 현실적인 수치인지를 검토한다.
또한 더존시스템 같은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에서 원장(기업의 회계, 재무, 거래 내역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핵심 장부)이나 급여내역사 등을 확인하며 특수관계인 거래, 내부 이슈나 잠재적 위험 요인을 점검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투자 사례를 꼽는다면
△차이나다라는 중국어 온라인 회화 플랫폼이 있었다. 사업 기획, 중국 명문대 출신으로 이뤄진 창업 멤버 등 구성을 좋았으나 오프라인까지 사업을 확대하려는 시기에 사드와 한한령, 그리고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결국 자본잠식상태까지 갔던 곳이다. 회사는 시장·고객·경쟁 환경 변화에 대응해 핵심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목표와 전략을 설정하는 적극적 전환하려고 노력했다. 이른바 '피벗팅'을 꾀하면서 'AI 금융컨텐츠플랫폼 어스얼라이언스'로 바뀌면서 빠른 성장성과 수익성으로 변화하여 기업가치가 성장하는 반전을 이뤘다. 감액(VC가 투자한 기업이 망하면 펀드 투자금액을 삭감하는 것)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초기 투자액(10억원)을 넘어 결과적으로 23억원에 회수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억이 남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 목표와 계획은
△VC업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코스닥 소형주는 여전히 어려운 환경이지만 기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달바 투자 성과가 올해를 상징한다고 본다. 비상장 시기부터 배당을 받았고 상장 이후에도 배당을 통해 원금의 약 40%를 회수했다. 향후 멀티플 30배 수준인 600억원 이상 회수가 목표다.
또한 내년에는 1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에서 VC 간접투자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규 펀드 결성을 검토하고 있다.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라 운용 역량과 회수 성과를 함께 증명하는 것이 목표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