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개봉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가 오는 3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나는 벌써부터 궁금하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트럼프 시대의 징후, 즉 혐오와 분열을 먹고 자란 극우 세력이 어떻게 사회를 야만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는지 고발한 작품이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했다. 표면적으로는 ‘마약 카르텔 척결’을 내세웠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 석유 기업 경영진을 모아놓고 투자를 촉구하는 등 이 나라의 석유 이권을 노린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셰일 오일 혁명 이후 남아도는 경질유 대신, 텍사스와 멕시코만 연안에 즐비한 유휴 정제 시설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선 베네수엘라의 끈적한 기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앤더슨 감독의 2007년 걸작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를 떠올렸다. 20세기 초, 석유를 찾아 미국을 횡단한 가상의 ‘오일맨’ 대니얼 플레인뷰의 광기를 다룬 작품인데, 다시 보니 땅 위로 치솟는 석유 기둥의 질감이 흥미롭다. 동부 펜실베이니아의 맑은 ‘경질유’와 달리, 영화의 배경인 서부 캘리포니아의 석유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이었다. 이는 아스팔트 성분이 가득한 ‘중질유’로, 지금 베네수엘라에 매장된 석유가 바로 그 석유다.
플레인뷰는 석유 매장지를 주민들에게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고아 소년을 입양해 “내 사랑스러운 파트너”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유정 폭발 사고로 아들의 귀가 멀자, 가차 없이 아들을 기숙학교로 내쳐버린다. 유전 지대에서 활동하는 젊은 목사 ‘일라이’의 존재도 상징적이다. 그는 죽은 신도의 땅에서 석유를 시추하자며 돈을 요구한다. 하지만 플레인뷰는 이미 그 땅속의 기름을 다 가로챘다며 그를 조롱한다.
“나에게 밀크셰이크가 있어. 너도 밀크셰이크가 있지. (하지만, 석유 사업이란) 내 빨대가 건너편 방에 있는 자네의 밀크셰이크를 다 빨아 먹는 거야.”
오일맨은 미국 그 자체다. 미국 자본주의는 가족주의, 기독교와 협력하여 석유를 추출하며 성장했다. 영화는 그 자본주의란 것이 가족과 종교를 믿는 척한 것일 뿐, 종국에는 그 무엇도 개의치 않는 ‘깡패’와 같다는 충격적 폭로로 막을 내리는데, 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다.
석유 개발과 함께 시작된 오일맨의 야망과 꿈이 일확천금의 탐욕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린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의 한 장면.(사진=한국소니픽쳐스)
앞으로 베네수엘라는 어떻게 될까? 낙관론자들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유가 안정을 기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트럼프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서구 언론에서 며칠 동안 보도되지 않았던 사망자가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남미 국가가 불편함을 표시했다. 남미에서 반미 열풍이 다시 불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심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 업체들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시설을 재건하는 데 선뜻 막대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을까?
석유는 전쟁을 몰고 온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이라크 침공이 그랬고, 지금 베네수엘라 사태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땅속에 묻힌 탄소를 추출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독점과 쟁탈을 부른다. 매장량은 한정되어 있고, 주인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으며, 국경을 넘어 어디에나 공평하게 쏟아진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는 본질적으로 ‘평화의 에너지’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남의 땅에 군홧발을 들일 필요가 없다.
앤더슨 감독은 현대 미국 자본주의 탄생을 오일맨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래도 지난 세기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고 기후변화 과학을 선도하며 내재한 야수성을 제어해 왔다. 하지만 제2기 트럼프 정부는 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개의치 않는다. 세계가 탈탄소를 향해 나아갈 때, 트럼프는 낡은 유정탑을 세우며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안타깝다. 피 묻은 빨대를 거두지 않으면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