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공공기관의 회의실. 경영평가 보고서 작성을 앞두고 두 팀이 마주 앉았다. A 팀장이 말한다. "이 항목은 우리 팀 소관이 아닙니다. B팀에서 작성하셔야죠." 그러자 B 팀장이 받아쳤다. "저희도 해당 자료가 없습니다. 규정상 A팀 업무 아닌가요?"
서로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규정집을 펼쳐봐도 실제로 어느 쪽 업무인지 명확히 적혀 있지 않다. '회색지대'다. 결국 보고서 작성은 늦어지고, 누군가 억지로 떠안고 나서야 일은 마무리된다.
나는 이런 현상을 '분할손(分割損)'이라 부른다. 조직을 나눈 대가로 치르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탁구에서 복식경기를 할 때 파트너 사이로 공이 떨어지면 서로 쳐다보기만 하다 실점하는 장면과 같다. 두 선수 모두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사이'가 비어 있었을 뿐이다.
조직이 커질수록 분업은 피할 수 없다. 역할과 책임(R&R, Role and Responsibilities)을 명확히 하는 건 효율의 기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R&R이 정교해질수록 '내 일'과 '네 일' 사이엔 틈새가 생긴다. 문제는 이 틈새를 규정으로 메울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업무를 빈틈없이 나눌 수 있는 규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회색지대가 남는다.
회색지대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규정에 없으니 내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단 내가 한 발 먼저 나서보겠다'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조직에서 전자가 더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괜히 나섰다가 실수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고, 성공해도 공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개인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 조직 전체는 비합리적인 손실을 입는다. 이것이 분할손의 역설이다.
분할손을 줄이려면 직책자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회색지대를 발견했을 때 "누구 일이냐"고 따지기보다 "이 일이 왜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해지면 담당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탁구 복식에서 실력 좋은 선수가 조금 더 넓은 영역을 커버하듯, 조직에서도 여력 있는 쪽이 한 발 더 나서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직책자가 먼저 "내가 안고 가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
실제로 한 기관에서는 팀장회의 때 회색지대 안건이 나오면 '우선 담당'을 정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완벽한 업무 분장이 아니라, '일단 초안을 만들 팀'을 정하는 것이다. 초안이 나오면 논의가 구체화되고, 관련 팀 간 협업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먼저 손 내민 팀이 손해 보지 않도록, 노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포츠에서 좋은 팀플레이는 '핑퐁(떠넘기기)'이 아니라 '패스'다. 핑퐁은 공을 상대방에게 넘기고 손을 터는 행위다. 패스는 동료가 받기 쉬운 위치로 공을 전달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이 다르다. 핑퐁에는 '네 일'이라는 단절이 있고, 패스에는 '우리 일'이라는 연결이 있다. 분할손은 핑퐁이 많은 조직에서 커지고, 패스가 많은 조직에서 줄어든다.
모든 조직은 나누어야 운영된다. 그러나 나눈 것을 다시 이어야 살아 움직인다. 분할손은 나눔의 필연적 부산물이지만, 이음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다. 규정 뒤에 숨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한 발 먼저 다가가는 것. 그것이 분할손을 넘어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시작이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