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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8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CP(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를 문서상 제도가 아닌 실제 작동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 잇따라 적발된 대규모 담합 사건에 대해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구성원 변호사는 CP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CP를 도입한 기업은 많지만 제도를 갖추는 것만으로 불공정거래를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가 담합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칼을 빼들면서 기업들이 사전에 법 위반 행위를 발견하고, 막아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백 변호사는 예방 체계가 임직원의 일상 업무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사와의 접촉이나 정보 교환처럼 평소 업무로 여기는 행동도 담합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위험이 큰 업무에는 구체적인 행동 기준과 사전 검토 절차를 마련하고 위반 징후가 발견되면 제동을 걸 수 있도록 내부통제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IB토마토>는 백 변호사를 만나 CP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과 기업의 대응 방안을 들었다.
(사진=법무법인 바른)
다음은 백광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최근 대규모 담합 사건이 잇따라 적발됐다. 기업의 CP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CP를 문서상 제도가 아닌 실제 작동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자율 준수 편람, 교육 자료, 신고 채널을 갖추고 있다. 다만, 실제 가격 결정이나 입찰, 경쟁사 접촉, 대리점 관리, 계열사 거래 현장에서 위반 가능성을 조기에 발견하고 멈추게 하는 장치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판례에서도 대표이사나 경영진이 담합 사실을 직접 보고받지 못하고 실제로 몰랐더라도, 합리적인 정보 보고 시스템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리했는지가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 회사가 법 위반을 막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만들고 실제 운영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위험 업무를 식별한 뒤 업무별 체크리스트와 사전승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현장 모니터링과 정기 감사로 위반 징후를 찾고, 문제가 발견되면 제재와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CP는 갖추는 것보다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CP의 역할도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보는가?
△과거 CP는 문제가 발생한 뒤 조사와 과징금, 소송에 대응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핵심 경영 인프라로 전환되고 있다.
공정거래 위반은 법무팀이 처리할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과징금과 형사책임, 손해배상소송, 입찰 제한, 평판 훼손, 투자자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SG의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이사회와 경영진이 이런 위험을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했는지가 중요하다.
CP의 궁극적인 목표는 과징금 감경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다. 감경 혜택은 기업이 CP에 관심을 갖게 하는 출발점일 수 있지만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실제 목표는 애초에 공정거래법 위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방식 자체를 설계하는 것이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큰 지점을 평소에 점검하고 고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담합 등 법 위반 행위를 내부에서 미리 막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업계 관행이라는 인식이 있다. 오래된 산업일수록 경쟁사 직원과의 교류나 협회 활동, 시장정보 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가격과 공급량, 생산량, 입찰 참여 여부, 거래처, 향후 영업전략 같은 민감 정보를 주고받는 순간 담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현장과 본사 사이의 거리도 문제다. 기업 규모가 크고 사업장이 흩어져 있으면 위험은 일선 현장에서 먼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진이나 법무부서의 준법 의지가 영업·구매·입찰·대리점 관리 담당자의 구체적인 행동 기준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어렵다.
교육도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담합하지 말라’는 원론적 내용만으로는 실무자가 실제 상황에서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협회 회의의 어떤 발언이 위험한지, 경쟁사로부터 가격 정보를 들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직무별·상황별 교육이 필요하다.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도 살펴야 한다. 실적은 강하게 요구하면서 위험을 차단하는 절차에 관심이 없다면 현장은 회사의 실제 메시지를 실적 우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복 위반은 개인의 일탈뿐 아니라 조직 시스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리니언시(자진신고) 제도는 담합 적발과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에서 자진신고 혜택 축소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는가?
△자진신고 혜택 축소가 예상되면서 기업의 신고 유인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담합 적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으로 꼽힌다.
담합은 합의서처럼 명확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내부자의 진술과 자료가 중요한 만큼, 기업이 자진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은 조사 개시 후에는 1순위로 신고하더라도 과징금의 25%를 부담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자진신고의 이점이 사라지면서 기업이 신고를 주저할 수 있는 것이다. 과징금 규모가 크면 25%도 상당한 금액이다. 자진신고를 통해 자료를 제공하기보다 끝까지 다투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재를 강화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담합을 밝혀내는 데 필요한 협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조사 전에 일부 기업은 자신의 행위가 담합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경쟁사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업계 관행으로 생각하다가, 조사를 받고 법률 자문을 거친 뒤에야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신고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조사 전 신고와 조사 후 신고의 혜택을 차등화하는 개정이 실제로 얼마나 조기 신고를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이 신고를 결정하려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담합 억제 목적과 더불어 내부자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리니언시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을지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CP를 건강검진에 비유했다. 위반 행위가 없더라도 어떤 업무를 점검해야 하며, 서류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위험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나?
△건강검진은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받는다. CP도 마찬가지다. 위반이 발생한 뒤 조사하면 이미 과징금과 소송, 평판 위험이 현실화된 다음일 수 있다.
경쟁사와 접촉하는 업무, 가격·할인·리베이트를 결정하는 업무, 입찰 관련 업무를 상시 점검해야 한다. 대리점·가맹점·협력업체의 거래조건을 정하거나 계열사 간 거래·지원이 이뤄지는 업무도 중요하다.
계약서와 규정이 잘 마련돼 있어도 실제 업무는 다르게 운영될 수 있다. 지침과 계약서 검토에 직원 인터뷰, 실무형 가이드라인과 체크리스트 구축, 상시 모니터링, 정기 감사를 함께 진행해야 바람직하다.
아울러 제보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사 접촉 기록과 가격 변경 사유, 입찰 전후 커뮤니케이션, 예외 승인 내역, 이메일·메신저의 의심 키워드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시스템이 스스로 위험 신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면 디지털 포렌식 리뷰도 활용할 수 있다.
-실무자가 담합과 일반 업무의 경계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경쟁사와의 민감 정보 교환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가격, 할인율, 가격 인상 시기, 생산량과 공급량, 입찰 참여 여부, 낙찰 희망 가격, 거래처 배분, 향후 영업 전략 등을 공유해서는 안 된다.
실무자는 정보 교환에 대해 ‘합의한 것이 아니라 듣기만 했다’, ‘공식 협회 자리였다’, ‘업계 분위기를 파악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담합은 명시적인 계약서 등 서류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향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가 경쟁사 사이에서 오고 가고, 그에 따라 경쟁이 제한됐다고 판단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실무자가 기억하기 쉬운 기준은 경쟁사 관계자와 미래의 시장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향후 가격과 물량, 입찰, 거래처, 거래조건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협회 회의나 비공식 모임에서 이런 주제가 나오면 즉시 이의를 제기하고 자리를 벗어난 뒤 법무·컴플라이언스 부서에 보고해야 한다.
-CEO의 준법 선언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재무·법무·인사 부문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CEO의 의지가 예산과 권한, 평가와 징계, 보고 체계에 반영돼야 한다. 재무 부문에서는 매출과 이익 목표가 현장에 위법 유인을 주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무리한 가격 인상과 과도한 판매목표, 특정 거래처에 대한 예외적 지원, 계열사 간 비정상적인 거래조건은 공정거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법무·컴플라이언스 부서의 행동은 사후 자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가격정책과 입찰 참여, 경쟁사 접촉과 협회 활동, 대리점 계약 변경, 계열사 지원 거래 등 위험이 큰 업무에 대한 사전 검토권과 중지 요청권이 필요하다.
인사 부문에서는 평가·승진·보상·징계에 준법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 위반한 직원에게 실적이 좋다는 이유로 관대한 처분을 하면 제도가 무력화된다. 반대로 위반 가능성을 보고한 직원이 불이익을 받으면 내부 신고가 작동하지 않는다. 경영진의 준법 의지는 실제 의사결정과 인사·재무 시스템에서 드러나야 한다.
-대리점 거래가 많은 유통기업이 공정거래 위반을 예방하려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점검해야 하나?
△본사와 대리점의 힘의 차이가 커 거래상 지위 남용 위험이 발생하기 쉽다. 판매목표 강제, 물량 밀어내기, 판촉비 전가, 반품 제한, 계약 해지·갱신 거절, 경영 간섭, 불이익 제공 여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서와 실제 운영이 일치하는지다. 계약서에는 자율적인 거래로 돼 있어도 현장에서 목표 달성을 사실상 강제하거나 원하지 않는 물량과 판촉비를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 서류만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대리점과 영업 담당자 인터뷰, 비용 부담 내역, 반품·해지 사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계열사가 많은 유통 그룹은 부당 지원 문제도 점검해야 한다. 거래 단계에서 역할이 없는 계열사를 끼워 넣어 수수료를 주는 이른바 ‘통행세’나 계열사에만 유리한 가격·물량 몰아주기가 대표적이다. 본사 규정을 정비하는 데서 나아가 대리점과 접촉하는 영업 담당자의 실제 업무 방식까지 관리해야 한다.
-내부 신고나 위반 행위 발견 이후 놓치기 쉬운 절차는 무엇인가? 준법 교육에도 위반이 반복된다면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나?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은 초기 대응이다. 관련 자료를 신속히 보전하고 조사 범위와 보고 라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 조사 대상자에게 불필요하게 정보가 전달돼 자료 삭제나 진술 맞추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원인 분석도 중요하다. 위반자를 징계하고 교육을 한 번 더 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승인 절차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상급자가 알고도 묵인했는지, 성과 압박이 있었는지, 법무·컴플라이언스 부서에 충분한 권한이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교육은 회사 업종과 담당자의 직무·직책에 맞춰야 한다. 입찰 담당자에게는 입찰 담합을, 영업 담당자에게는 경쟁사 접촉과 가격정보 교환을, 대리점 담당자에게는 거래상 지위 남용 사례를 교육하는 방식이다.
교육에도 위반이 반복된다면 가장 먼저 인센티브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 준법을 강조하면서 무리한 실적을 낸 직원을 더 높게 평가하면 직원들은 실적을 회사의 실제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교육과 모니터링, 제재와 보상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사전승인과 상시 모니터링, 정기 감사, 실질적인 징계, 제도 개선, 경영진 보고까지 이어져야 재발 방지가 가능하다. CP는 한 번 도입하고 끝나는 제도가 아니라 계속 진단하고 보완해야 하는 경영 시스템이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