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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전직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품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법정에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판 포기 의사를 밝혔다. 지난 3월 31일 구속된 뒤 입을 연 첫 발언이 법원 판단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는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제게서 마침표가 찍히길 바란다"며 자신에 대한 재판과 구속 기간 연장을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이 발언 직후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 전원은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방청석 곳곳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으며, 재판 말미에는 한 지지자가 일어나 "사형시켜달라"며 고성을 질러 경위들에게 끌려 퇴정당했다.
 
누구보다 법치를 준수해야 할 전직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지지층에 호소하며 사실상 정치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는 검찰·특검 수사 당시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때 출석을 거부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초기에 150여 명이 넘는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는 등 재판 지연 작전을 폈다.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 대부분에 대한 유죄판결이 잇따르는 가운데 법정에서 입을 열어 한 첫 발언이 시민에 대한 사과나 자신의 책임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정치보복'이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유죄를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재판을 정치적 이슈로 부각하고 지지층에 호소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무죄를 가르는 사법적 절차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말은 재판의 공정성에 흠집을 내고 사회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약 20여 분 동안 이뤄진 휴정시간에서 지지자들은 기자들과 재판부를 향해 욕설과 고성을 내뱉었다. 동정 여론에 호소해 지지층의 결집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나, 국론을 분열시키고 적폐 청산에 영향을 미쳐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보고 시점 조작, 화이트리스트를 활용한 극우단체를 동원 등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시간 끌기와 정치 다툼을 조장하는 행동은 지양돼야 한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위 있는 모습은 사법부를 존중하고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데 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된 이후부터 재판에서까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몇 차례 말했다. 이제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법치를 준수해야 할 때다.
 
홍연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