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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풀빵과 헌옷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를 마흔 한 살에 잃었다. 전태일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혹사당하는 노동현실을 고발하면서 분신해 산화해갔다. 전태일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다. 이 부탁을 들은 어머니는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하고 몇 번이고 약속을 했다. 어머니는 인생의 후반 41년은 큰 아들 전태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시간이었다. 이소선 어머니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전태일이 있었을까? 오늘날 사람들이 전태일을 기억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소선 어머니의 분투가 있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41년을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다가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 전태일의 묘 근처에 묻히셨다.
 
전태일재단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를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생각난 게 전태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얘기였다. 어머니가 41년을 싸우면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투쟁만이 아니라 민주화투쟁에도 헌신했던 일은 모두가 잘 안다. 투사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30년 전에 열사의 유가족들이 모인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에서는 집 마련을 위한 서화전을 개최했고, 그 결과로 <한울삶>이라는 간판을 내건 작은 한옥집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집 한쪽 벽에는 열사들의 영정을 걸 때의 일이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은 변변한 사진이 없었다. 그래서 화가를 수소문해서 전태일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손바닥만 한 스냅 사진 한 장을 갖고 그 화가는 나름 열심히 초상화를 그렸다. 그렇게 그려온 초상화는 전태일을 그대로 빼박은 나무랄 데 없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그 화가는 다시 초상화를 그려왔지만, 어머니는 마뜩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초상화를 그려왔으니 세 번째 그려 와서야 어머니는 만족했다. 본래의 전태일보다 너무 예쁘게 그려진 초상화였다. 원래 전태일은 코가 뭉툭하고,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천하의 이소선 어머니도 예쁜 자식으로 기억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예쁘게 그려진 전태일 등 열사들의 영정이 걸린 그 집에서 1년을 이소선 어머니와 동거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나를 동거인으로 소개하고는 했다.
 
전태일을 말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가 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차비가 없어서 창동 집까지 밤을 새어 걸어갔다는 그 얘기 말이다. 나는 그 얘기와 함께 어머니의 헌옷 장사 얘기도 떠오른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났지만 노동자들이 먹을 게 없으니 시장을 돌면서 헌옷을 모아 수선해서 팔아서는 그것으로 노동자들에게 국수를 끓여 먹이고는 했다는 얘기다. 아들의 풀빵이 어머니의 헌옷으로 이어졌다. 전태일의 풀빵이나 어머니의 헌옷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연대의 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아들의 그 뜻을 이어서 평생 가난하게 살다 가신 어머니가 오늘 그립다.
 
오늘 노동자들의 현실은 비참하다.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불평등은 극심해졌다. 이럴 때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 제작된다는 게 너무 반갑다. 그 <태일이> 영화에  평생을 아들이 내준 숙제를 풀기 위해 헌신하다가 돌아가신 이소선 어머니의 분투기도 들어갔으면 좋겠다. 
 
전태일재단에서는 오는 19일까지 '다음 같이가치'에서 <태일이> 영화 제작비를 모금하고 있다. <태일이>는 모든 세대가 같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인 2020년에 개봉된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