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보연 기자] 한국증권금융이 삼성, SK, LG 총수 일가에게 빌려준 돈만 1조1024억원에 달합니다. 금리는 4%대로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차이가 거의 나지 않고 담보유지비율은 110%에 불과합니다. 덕분에 일부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은 반면 한국증권금융은 마땅히 거뒀어야 할 이자 수익을 제대로 얻지 못했습니다. 그 차액을 대기업에 퍼준 것이나 다름없어 준공공기관인 한국증권금융이 설립 취지와 다르게 대기업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사진=뉴시스)
같은 1000억원을 빌리는 데 증권금융에선 삼성전자 주식 217만3000주를 담보로 설정한 반면 신한투자증권에선 그보다 많은 234만7000주를 설정한 것입니다. 금리도 각각 4.87%와 5.30%로 차이가 큽니다. 이에 따른 1년 대출이자는 각각 48억7000만원, 53억원입니다. 증권금융에선 저금리로 자금을 제공한 결과 신한투자증권에 비해 매년 4억3000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SK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최종건 창업회장의 장손 최영근 씨 모두가 보유 주식을 담보로 100억~3500억원을 4%대 이자로 빌렸습니다. 담보유지비율도 모두 110%를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표=뉴스토마토)
대기업으로 흐르는 돈줄
한국증권금융의 새 수장 김정각 사장.(사진=뉴시스)
한국증권금융은 국내 유일의 증권금융 전담 회사입니다. 증권사들이 의무적으로 전액을 맡겨야 하는 투자자 예탁금을 법률상 강제적으로 한국증권금융이 독점 관리하면서 증권사에 대출하고 이자를 받는 형태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즉 증권사들의 중앙은행인 셈입니다. 한국증권금융의 최대주주는 한국거래소이며 준공공기관의 성격이 강한 곳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증권금융 사장 자리에는 금융위원회 1급 출신이, 부사장엔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출신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게 관행처럼 반복됐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새 수장으로 낙점된 김정각 신임 사장도 금융위 고위 관료 출신입니다. 그는 금융위에서 중소서민금융정책관, 기획조정관, 자본시장정책관을 거쳐 금융정보분석원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습니다. 전임 윤창호 전 사장 역시 금융위 고위 관료 출신이었는데요. 금융위 금융산업국장,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을 거쳤습니다.
조영익 부사장도 금감원 인사팀장, 공보실국장, 감독총괄국장을 거쳐 부원장보를 역임하고 지난해 3월 증권금융으로 왔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준공공기관에서 대기업 일가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저금리로 자금을 제공하느라 한국증권금융이 원래 거뒀어야 할 이자수입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버는 데 그쳤다"며 "그 차액을 정부가 대기업에 무상으로 준 것과 같은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증권금융 관계자는 대기업 일가 저금리 대출과 관련해 "차주의 신용등급, 담보에 따라 대출 조건이 다르다"며 "다른 증권사들과 경쟁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줄 수는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김보연 기자 boye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