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바로가기
IR뉴스
HOME > IR뉴스
인쇄하기
대기업 일가에 '저리 대출' 퍼주는 한국증권금융
 
[뉴스토마토 김보연 기자] 한국증권금융이 삼성, SK, LG 총수 일가에게 빌려준 돈만 1조1024억원에 달합니다. 금리는 4%대로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차이가 거의 나지 않고 담보유지비율은 110%에 불과합니다. 덕분에 일부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은 반면 한국증권금융은 마땅히 거뒀어야 할 이자 수익을 제대로 얻지 못했습니다. 그 차액을 대기업에 퍼준 것이나 다름없어 준공공기관인 한국증권금융이 설립 취지와 다르게 대기업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증권금융이 주식담보대출로 삼성, SK(034730) (172,000원 ▲500원 +0.29%), LG(003550) (83,400원 ▼1,500원 -1.80%) 총수 일가에게 빌려준 돈은 1조1024억원입니다. 이중 가장 큰 금액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삼성전자 주식 836만3300주를 담보로 빌린 3850억원입니다. 금리는 4.87%, 담보유지비율은 110%입니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사진=뉴시스)
홍 전 관장은 똑같이 삼성전자(005930) (72,800원 ▼700원 -0.96%) 주식을 담보로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현대차증권, 교보증권에서도 돈을 빌렸습니다. 다만 이들 증권사가 평가한 홍 전 관장의 신용등급과 삼성전자 주식의 담보등급은 증권금융에서 평가한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1000억원을 빌리는 데 증권금융에선 삼성전자 주식 217만3000주를 담보로 설정한 반면 신한투자증권에선 그보다 많은 234만7000주를 설정한 것입니다. 금리도 각각 4.87%와 5.30%로 차이가 큽니다. 이에 따른 1년 대출이자는 각각 48억7000만원, 53억원입니다. 증권금융에선 저금리로 자금을 제공한 결과 신한투자증권에 비해 매년 4억3000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64,400원 ▼600원 -0.93%) 사장의 경우에도 똑같은 1000억원을 빌리면서 한국투자증권에 325만3000주를 맡겼습니다. 이자는 5.30%, 담보유지비율도 140%입니다. 증권금융만 110%로 낮게 설정한 탓에 대기업 가족 특혜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SK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최종건 창업회장의 장손 최영근 씨 모두가 보유 주식을 담보로 100억~3500억원을 4%대 이자로 빌렸습니다. 담보유지비율도 모두 110%를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표=뉴스토마토)
 
다만 하나증권과 대신증권(003540) (14,210원 ▲30원 +0.21%)에선 대출이자 5.40%, 담보유지비율 140%, 삼성증권(016360) (39,600원 ▲50원 +0.13%)에선 5.80% 이율에, 160% 비율로 질권을 설정해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태원 회장이 증권금융이 아닌 삼성증권에서 3500억원을 빌렸다고 가정할 경우 매년 0.89%씩 이자를 더 내야 합니다. 매년 최 회장은 31억1500만원을 아낀 반면 공공자금관리기금을 운용하는 증권금융은 그만큼 손해를 본 것입니다. 
 
대기업으로 흐르는 돈줄 
 
한국증권금융의 새 수장 김정각 사장.(사진=뉴시스)
 
 
한국증권금융은 국내 유일의 증권금융 전담 회사입니다. 증권사들이 의무적으로 전액을 맡겨야 하는 투자자 예탁금을 법률상 강제적으로 한국증권금융이 독점 관리하면서 증권사에 대출하고 이자를 받는 형태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즉 증권사들의 중앙은행인 셈입니다. 한국증권금융의 최대주주는 한국거래소이며 준공공기관의 성격이 강한 곳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증권금융 사장 자리에는 금융위원회 1급 출신이, 부사장엔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출신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게 관행처럼 반복됐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새 수장으로 낙점된 김정각 신임 사장도 금융위 고위 관료 출신입니다. 그는 금융위에서 중소서민금융정책관, 기획조정관, 자본시장정책관을 거쳐 금융정보분석원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습니다. 전임 윤창호 전 사장 역시 금융위 고위 관료 출신이었는데요. 금융위 금융산업국장,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등을 거쳤습니다. 
 
조영익 부사장도 금감원 인사팀장, 공보실국장, 감독총괄국장을 거쳐 부원장보를 역임하고 지난해 3월 증권금융으로 왔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준공공기관에서 대기업 일가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저금리로 자금을 제공하느라 한국증권금융이 원래 거뒀어야 할 이자수입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버는 데 그쳤다"며 "그 차액을 정부가 대기업에 무상으로 준 것과 같은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증권금융 관계자는 대기업 일가 저금리 대출과 관련해 "차주의 신용등급, 담보에 따라 대출 조건이 다르다"며 "다른 증권사들과 경쟁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줄 수는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김보연 기자 boye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