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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투기자본의 그늘)②지배력 취약한 기업 타깃…방어책 도입 절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6일 18:44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자본의 기업 인수는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이 발언이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유동성 확대에 힘입어 성장한 투기자본이 산업 전반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IB토마토>는 투기자본의 성장 배경과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국내 대기업 집단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진행한 기업집단은 총 43곳으로 공시대상 기업집단 88곳 중 절반에 달한다. 지주회사 전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투기자본으로부터 취약한 지배구조를 방어하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하기에는 걸림돌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에 정관상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한국형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 
 
지주사 전환 잇달아…4년 만에 2배
 
6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된 ‘2024년 지주회사 소유출자 현황 및 수익 구조 분석·공개’에 따르면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 88곳 중 43곳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올해만 현대백화점(069960) (50,600원 ▼400원 -0.79%)·OCI(456040) (105,500원 ▼600원 -0.57%)·동국제강(460860) (11,760원 ▼160원 -1.36%)(지주사 체제 신규 전환)·원익·파라다이스(034230) (13,600원 ▲10원 +0.07%) 등 5곳이다. 지난 2020년 22곳에서 4년 만에 2배가 됐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앞서 1990년대까지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불법이었다. 하지만 1997년 IMF금융위기 이후 법 개정에 따라 산하 계열사의 사업을 지배하는 지주사가 허용됐다. 이 같은 결정은 당시 대다수 기업들이 운영해온 순환출자구조 때문이었다.
 
순환출자구조는 그룹 내 계열사의 순환 출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고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방법을 말한다. 지난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할 때까지 기업집단의 일반적인 지배구조였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는 순환출자 구조 상 계열사 1곳의 문제가 그룹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SK그룹과 모나코 국적의 자산운용사 소버린 간 경영권 분쟁 사건이다. 당시 SK그룹은 SK C&C → SK(003600) (207,000원 ▼12,000원 -5.80%) → SK텔레콤 → SK C&C, SK C&C → SK → SK네트웍스(001740) (5,700원 ▼90원 -1.58%) → SK C&C로 이어지는 두 개의 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오너인 최태원 회장은 SK C&C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었고 정작 SK에 대한 지분은 1%에 불과했다.
 
소버린은 이런 SK그룹의 약점을 노려 SK 지분을 14.99%까지 확보해 단일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소버린은 당시 경영권 교체와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매각을 통한 배당을 요구했고 법적 분쟁 끝에 2005년 SK를 매각하고 떠났다. 소버린은 주당 평균 9293원에 사들인 뒤 5만2700원에 매각, 800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남겼다.
 
지주회사, 경영권 방어 가능하지만 전환 어려워 
 
지주회사 전환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권고됐다. 지주회사 전환 시 상장 회사의 지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의 주식은 40% 이상 확보하면 합법적으로 지배구조의 정점을 차지할 수 있다. 지배구조가 단순해지고 경영투명성도 제고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 기업집단 중 상위그룹사는 지주사 전환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복잡한 순환출조 구조를 정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계열사의 경영권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식에서 롯데의 사기를 흔들고 있다.(사진=롯데그룹)
 
현행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지주회사 전환 시 ‘금융회사’도 소유할 수 없다. 롯데그룹의 경우 오너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이후 지주사로 전환할 때 알짜 계열사로 평가받던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해야 했다.
 
삼성도 삼성생명(032830) (70,400원 ▲100원 +0.14%)이 사실상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화재(000810) (255,000원 0원 0.00%)삼성증권(016360) (39,600원 ▲50원 +0.13%), 삼성카드(029780) (32,550원 ▼50원 -0.15%), 삼성자산운용 등의 다수의 금융계열사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본업인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할부 대출, 리스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계열사로 둔다.
 
한화그룹 역시 그룹 내 보험과 증권 등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한화그룹 전체 매출 중 금융사 몫이 40% 남짓이다. 20%가 안 되는 삼성그룹과 4% 수준인 현대차그룹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형 포이즌필 필요성 제기…기업 존속 대안 될까 
 
남기남 자본시장연구위원이 발표한 '상장기업의 경영권보호 정관조항 채택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현재 외부 자본으로부터 경영권 방어로 채택되고 있는 회사 정관조항으로는 초다수결의제(supermajority voting rule),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이사해임비율제한, 시차임기제(staggered board)가 있다.
 
초다수결의제란 정관으로 주주총회 의결정족 요건을 상법에서 정하는 것보다 가중하는 방식이다. 현재 상법상 의결정족수는 의결권을 가진 주식 총수의 4분의1 이상 찬성이다. 해당 조항 삽입 시 발행 주식 총수의 70% 이상 참석 중 90% 찬성까지 기준을 높일 수 있다.
 
황금낙하산 제도는 기업의 고위 임원이 인수합병(M&A) 등으로 인해 퇴직할 경우 받게 되는 고액의 보상 패키지 조항이고 이사해임비율제한은 동일한 사업연도에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될 수 있는 이사의 비율 상한을 정관에서 정하는 것을 말한다. 시차임기제 또한 이사의 임기를 차등적으로 부여해 동시 교체 비율을 낮추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단기적인 경영권 방어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당장 이사회 교체를 통한 경영권 장악은 막을 수 있어도 장기적 방어는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이 '포이즌 필(Poison Pill)'이다. '신주인수선택권'이라 불리는 해당 조항은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공격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하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경우 기존 경영진에 대한 일반주주들의 판단에 따라 방어가 가능하다. 일반주주 입장에서도 회사 신주를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하지만 국내 도입은 논의만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에 시장에선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태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외 사모펀드들이 적대적 M&A 이후 투자자금 회수를 위한 단기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고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라며 “1980년대 미국이 포이즌필을 활용해 약탈적인 M&A문제에 대처했듯이 정부와 국회가 나서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