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대성 기자]국내 증권사들의 자사주 관리와 배당 정책이 정부 밸류업 정책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자사주 활용 방식 자체가 실질적인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오너일가 배당 집중과 경영권 방어 등 지배주주의 이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진 영향입니다.
신영증권 자사주 52.6%…지분율보다 최대 2배 배당수취
(사진=뉴스토마토)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중
신영증권(001720) (59,000원 ▼400원 -0.68%)이 자사주 비중 52.6%로 가장 높습니다. 뒤를 이어
부국증권(001270) (21,700원 ▲150원 +0.69%)(42.73%),
대신증권(003540) (14,210원 ▲30원 +0.21%)(26.07%),
미래에셋증권(006800) (7,440원 ▲110원 +1.48%)(25.26%),
유화증권(003460) (2,385원 ▼10원 -0.42%)(19.31%),
SK증권(001510) (642원 ▼2원 -0.31%)(12.42%),
LS(006260) (83,400원 ▼2,900원 -3.48%)증권(9.15%),
키움증권(039490) (94,000원 ▲200원 +0.21%)(6.32%),
유진투자증권(001200) (3,645원 ▼90원 -2.47%)(5.19%) 등도 많은 자사주를 보유 중입니다.
여전히 많은 증권사들이 소각없이 자사주를 대량 보유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문제는 자사주들이 소각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면서 대주주의 배당 이익 극대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사주는 배당을 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자사주가 많을수록 그 배당이익이 자연스럽게 지분율이 큰 대주주에게 집중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신영증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자기주식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서 지난 3월말 기준 자사주는 총 866만119주가 됐습니다. 총발행주식 1644만주 대비 자사주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죠. 자사주는 배당에서 제외되므로, 실질적인 수혜자는 원국희·원종석 등 오너 일가로 귀속된다는 비판이 제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신영증권은 3년 만에 배당금을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조로 인해 오너 일가에게 배당이익을 집중시킨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신영증권은 배당금을 보통주 기준 주당 4500원, 우선주는 주당 455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보통주 기준 배당금 총액은 361억원이며, 우선주 기준 배당금 총액은 79억원으로 총 440억원이었습니다.
원국희 명예회장과 원종석 회장은 보통주와 우선주를 다 합해 각각 77억원과 59억원 가량의 배당금을 받았는데요. 결과적으로 원 명예회장과 원 회장은 각각 총 배당금의 17.5%, 13.4% 를 차지해 지분율 대비 최대 2배에 달하는 배당 이익을 취했습니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모든 주주에게 지분율에 따라 동일하게 배당이 이뤄지므로 대주주가 특별히 많은 배당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자사주 소각 등 밸류업 정책에 대해서도 "계속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자사주, 경영권 방어·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활용
자사주를 매입하지만 이를 소각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으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호 세력에게 이를 넘겨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또한 일부 증권사는 자사주를 임직원과 특수관계인에게 상여금 등으로 지급해 손쉽게 지분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는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외부 세력의 경영권 도전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일례로 대신증권은 2012년 이후 매년 자사주를 임직원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어룡 회장과 양홍석 부회장 두 사람은 1%가 넘는 지분을 자사주 상여로 올렸습니다. 지난 3월에는 이 회장 외 94명의 임직원들에게 75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했습니다. 지난 2월에도 14억원어치 자사주를 이 회장 외 39명에게 지급했습니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이 대주주의 경영권을 공고히 하면서도 회사 자산으로 손쉽게 지분율을 늘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부 증권사, 소각 통한 기업가치 제고 실천
반면 일부 증권사들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실제로 기업가치 제고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NH투자증권, LS증권 등이 그 예입니다. 미래에셋증권은 2030년까지 1억 주 이상의 자사주를 소각해 주당순자산비율(PBR)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LS증권 역시 앞서 사명 변경과 함께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 637억원을 단행했습니다. 소각을 통해 주식 수를 줄임으로써 주당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키움증권도 올해 11월15일까지 446억원 규모의 자사주 35만주를 취득하고 내년 3월 중 소각한다는 계획입니다. 내년 소각 예정인 주식 수는 105만주로 발행주식총수의 4.1%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일부 대형사에 국한돼 있어 증권업계 전반에 걸친 변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증권사들은 자사주 소각보다는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와 대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자사주 관리에 대한 규제 강화와 함께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자사주 매입 후 일정 기간 내 의무 소각 제도 도입, 자사주 활용에 대한 공시 강화 등이 대안으로 꼽힙니다.
실제 지난 6월 금융위원회는 기업의 자사주 보유 및 처분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자사주 보유 현황과 보유 목적, 향후 처리 계획(추가취득, 소각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고 사업보고서에 담아야 합니다. 인적분할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도 제한합니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와 주주 제안 등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증권사들의 자사주 관리 실태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지배주주 위주로 진행됐다"며 "주주 평등 원칙에 따라 지배주주의 특혜를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대표는 "금융위,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자본시장컨트롤타워에서 집중적으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자본시장 5개년 또는 10년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와 박순혁 작가가 지난 3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개인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매도와 기업 밸류업 등을 논의했다. 2024.3.13(사진=연합뉴스)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