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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8일 17:0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은행권에 이어 2금융권까지 상생금융 딜레마가 커져가고 있다. 올해 초부터 금융당국의 수장들은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적극적 당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금융권은 흡사 도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자 보물이 쏟아져 나오는 설화를 연상케 할 만큼 상생금융 지원 방안을 앞다퉈 내놨지만 그 한계가 어디일지 갈피를 잡기 힘든 모양새다.
27일 금융위·금감원 은행장 간담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위)
지난 2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7개 은행장들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상반기에 이어 '상생금융'과 관련한 세부사항들이 논의됐는데, 주요 금융지주뿐만 아니라 특수은행, 인터넷은행, 외국계은행 CEO들까지 불러들여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행보는 결국 은행들이 고금리에 따른 사상 최대 이자이익을 거둔 것에 대해 사회적 책임론을 키우고 상생금융 분담금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반강제적 '상생금융 청구서'를 안긴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 규모는 2조원대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어 2금융권에도 상생금융 당부 행보가 이어지면서 우리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신한카드 등 카드사에서 총 1조5300억원 규모의 상생금융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보험사에서도 이 원장의 발길이 닿은 한화생명이 ‘2030 목돈마련 디딤돌 저축보험’이라는 상생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통상적으로 은행권이 상생금융 지원 방안을 내놓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으로서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감독기관인 금감원의 수장이 진두지휘에 나서 은행을 넘어 2금융권까지 목표 할당량을 지정하는 듯한 행보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인 이복현 원장이 손에 사정의 칼날 대신 도깨비방망이를 쥔 채 금융권에 휘두르고 있는 것으로 연상되는 모습은 시장경제의 조정자라기보다 관치금융의 일면을 보는 듯해 씁쓸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의 입장은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업권에도 당국이 뭘 생각하는지 이해하고, 당국도 금융회사들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를 신관치라고 비난하는 것은 서로 만나지도 말고 이야기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반문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상생금융에 대해 언급한 시기가 적절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코로나19 사태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비롯한 서민들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여론도 컸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도 이 취지에 공감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그 취지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제시한 2조원대의 상생금융 지원 가이드라인 이외에도 2금융권에까지 전가될 추가적인 상생금융 지원 방안을 어떻게 마련하고 내실을 다질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은행들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만으로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랄 수 있는 2조원을 채울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상생금융 대상을 청년과 고령층 등 취약계층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경우 이자 감면 방식의 상생금융 지원 대상이 일반 가계로 확대되면 이미 사상 최대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생금융을 고민해야 할 주체가 능동성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건전성과 수익성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 금은보화를 쏟아내고, 착한 혹부리 영감의 혹을 떼 내주는 설화는 즐겁기 그지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혹 떼려다 혹을 붙이게 된다거나 도깨비방망이가 소용없는 상황에 치닫게 될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자칫 금융당국의 행보가 상생금융이라는 좋은 취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내실 없는 과도한 숫자 부풀리기에 집중한 꼴이 될 경우, 실질적인 피해는 금융권을 넘어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용준 금융시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