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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신상품 개발 대신 베끼기 관행 만연
 
[뉴스토마토 민경연 기자] 보험업권에서 상품 표절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은행권에서도 상품·서비스 베끼기 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신과 수신 서비스가 기본이 되는 은행업 특성상 비난 여론을 우려해 독점적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다만 금융소비자 편익 증대를 위해 혁신 서비스 경쟁을 유인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정책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사 상품·서비스 줄줄이 출시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모임통장, '지금 이자받기' 서비스, 슈퍼 앱, 무료 환전 등 새로운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는 가운데 유사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은행에서 나온 상품이 히트하면 곧바로 다른 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는 식입니다. 
 
올해 초 토스뱅크는 전세계 17개 통화를 평생 수수료 없이 환전할 수 있게 해주는 '외화통장'을 출시했습니다. 외화통장은 출시 6일만에 30만좌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자 신한은행(2월)과 KB국민은행(4월), 우리은행(6월) 등 시중은행들도 덩달아 트래블카드를 연계한 무료환전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각 은행은 차별화를 위해 환전 수수료 무료 통화 서비스 국가 확대, 국내 이용시 할인, 달러·유로화 예치 시 이자 지급 등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핵심인 무료환전 기능은 대동소이합니다. 최근 카카오뱅크(323410) (25,950원 ▼150원 -0.58%) 또한 차별화를 외치며 달러 전용 무료환전 서비스인 '달러박스'를 출시했지만 무료환전이라는 핵심 기능은 다르지 않습니다.
 
은행권의 베끼기는 이번 만이 아닙니다. 지난 2022년 3월 토스뱅크는 정해진 날이 아니라 고객이 원할 때 전날까지의 이자를 즉시 받을 수 있는 기능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러자 케이뱅크도 '바로 이자 받기', 카카오뱅크는 '이자 바로 받기'라는 서비스를 잇따라 내놨습니다. SH수협은행도 매일받는 통장을 출시하며 유사한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이른바 '모임통장'도 베끼기 대상입니다. 카카오뱅크는 2018년 금융권 최초로 모임통장을 출시, 이용자 수 유입 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지난해 2월 토스뱅크가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과 유사한 기능의 상품을 내놨습니다. 과거 모임통장을 출시했다가 접은 바 있는 시중은행들도 다시 모임통장을 내놓았습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지난해 모임통장을 출시했습니다.
 
카카오뱅크가 모임통장을 출시한 후 토스뱅크, KB국민은행, 하나은행에서도 모임통장이 출시됐다. (사진=카카오뱅크, 토스뱅크, 국민은행, 하나은행)
 
통합 애플리케이션(슈퍼앱)같은 디지털 전략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해 말 신한지주(055550) (37,050원 ▼100원 -0.27%)의 통합 앱 '슈퍼쏠(SOL)' 출시 이후 기존 통합 앱이 없던 금융지주도 통합 앱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금융지주(316140) (12,940원 0원 0.00%)는 올해 4분기를 목표로 슈퍼앱 '뉴원'을 준비 중이고, 농협금융도 내년 초까지 기존 앱인 'NH올원뱅크'를 슈퍼앱으로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독점권 확보 따른 비난여론 우려"
 
은행권 상품·서비스 베끼기는 과거부터 꾸준히 반복된 행태입니다. 특허권에 해당하는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은행연합회는 독창성에 따라 최대 6개월간 판매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우선판매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제도 도입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선판매권제도를 승인 받은 상품은 10건이 채 안됩니다. 현재는 우선판매권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은행 쪽에서 관련된 요구도 없고,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보험업계는 '배타적 사용권 제도'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를 열고 독창성이 인정된 상품에 3~6개월 가량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합니다. 이 기간동안 다른 회사는 유사한 상품을 판매할 수 없습니다. 올해도 현재까지 손보협에서 6건, 생보협에서 1건의 상품이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습니다.
 
보험업권은 배타적 사용권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생명보험협회(왼쪽)와 손해보험협회의 배타적사용권 신청 현황.(사진=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 홈페이지 캡처)
 
최근에는 해외여행보험을 두고 보험사 간 표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는 삼성화재가 자사의 해외여행보험 모바일 가입 절차를 표절했다면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삼성화재(000810) (255,000원 0원 0.00%)가 해외여행보험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가입단계나 모바일 앱 화면 구성을 비롯한 사용자환경(UI)과 안내문구 등을 표절했다는 주장입니다.
 
다만 은행권 관계자들은 여신과 수신이 서비스의 기본이 되는 은행의 특성 상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일종의 사회적 책임이 있는 은행이 한 서비스를 독점 판매한다면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독점권을 가지는 게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적으면 경쟁이 덜하다. 대표적인 은행 상품은 예금과 대출인데, 서비스 유사성보다는 가격 경쟁력 측면의 고려가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민경연 기자 competiti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