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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정책금융'?…기업은행 실상은 '반민반관'
[뉴스토마토 이종용·김한결 기자] 중소기업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은행이 국책은행 탈을 쓴 민간은행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입법기관과 행정부가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사안과 직원 처우 개선, 지배구조 투명화 등 내외부 개선 요구에 대해 필요에 따라 다른 잣대로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태생적 숙명인 정책금융 기관으로서 임무는 뒤로 한 채 '반민반관'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국회 지적사항 개선 지지부진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요금 인하, 디스커버리펀드 보상 등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받은 중소기업 금융 정책 개선은 아직까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업은행 고금리 대출 이슈는 국감 단골손님입니다. 자금 사정이 급한 중소기업일수록 고금리를 감수하고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대출을 찾는데, 기업은행 금리가 시중은행과 맞먹는다는 지적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기업은행 '벤처 대출'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벤처대출 시범사업의 금리는 6~7%로 설정돼 있습니다. 대출 프로그램을 찾는 스타트업이 대부분 자금 융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자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이자 수준은 요지부동입니다.
 
기업은행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보다 낮게 적용을 하고 있다"며 상대적인 비교를 하는 데 급급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은행이 저원가성 예금을 늘리기보다는 조달금리가 높은 중소기업금융채권(중금채)에 대한 의존도를 높게 가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금채는 보통 시중은행의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하고 있어 조달비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투자자 피해와 관련한 분쟁 이슈 해결도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국회에서는 기업은행에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를 매듭지으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4년째 투자자 배상을 진행 중입니다. 디스커버리 펀드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대표가 운용한 펀드로 2017~2019년 시중은행과 증권사 등을 통해 판매됐는데요. 기업은행이 가장 큰 규모인 6800억원 가량을 판매했습니다.
 
기업은행은 고수익의 안정적인 투자처라고 투자자들을 속여 부실 상태인 미국 개인 간 거래(P2P) 대출채권에 투자했다가 2019년 2500억원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를 낳았는데요. 디스커버리 글로벌채권펀드의 경우 2022년 국정감사 당시 분쟁 조정 합의율이 5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업은행 측은 현재 합의율에 대해서는 고객 보호 목적으로 비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의환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기업은행은 금융감독원이 분쟁조정안으로 제시한 40~80% 배상 비율에서 좀 더 나아가지 않고 업무상 배임 우려를 핑계로 투자자 배상에 소극적이다"며 "5000억원에 육박하는 정부 배당을 지출하면서도 국책은행을 믿고 투자한 충성 고객들에는 등을 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 사기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24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장하원 등 피의자 구속 촉구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탕발림 공약 '노조추천이사제'
 
기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도 여러 은행장들이 취임 초기 공언했다가 허언으로 끝나며 미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전문가가 기업경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노동이사제'의 전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22년 1월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공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의 법 근거가 마련된 바 있는데요. 공기관·준정부기관은 근로자대표의 추천이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은 비상임이사 1명을 이사회에 선임해야 합니다. 
 
공운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기업은행 노조(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 명단을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정식으로 선임된 적은 없습니다. 기업은행은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가 노조추천이사제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금융위에 노조 추천 명단조차 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기업은행장 취임 때마다 '노조 달래기' 용도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윤종원 전 행장이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을 무마시키기 위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은 채 임기를 만료했고, 지난해 1월 취임한 김성태 행장 역시 노조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습니다. 다만 행장들의 약속과 달리 정작 기업은행 측은 기타공공기관이므로 해당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중소기업은행법 26조에 따르면 비상임 이사는 기업은행장이 제청하면 금융위원장이 임면하는 구조입니다. 국책은행 중 가장 먼저 노조추천이사를 선임한 수출입은행은 행장 의지로 관철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련하면서 노조 추천 이사를 도입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라며 "결정권을 가진 그룹내에서 받아들이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금융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보다 시중은행과의 영업 경쟁에 혈안이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민간은행 뺨치는 영업 압박
 
국책은행이면서 상장사인 기업은행이 주주 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영업 압박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내부에서는 정체성 논란마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이 2조6752억원으로 역대 최대 연간 순익을 기록했습니다.
 
4대 금융지주 중 실적 4위인 우리금융지주 순익(2조5167억)을 1000억원 가량 앞지른 규모입니다. 이런 실적에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률은 2.5%로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입니다.
 
기업은행의 임금 책정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공무원 임금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합니다. 위원회가 지난해 공공기관 임금 가이드라인을 2.5%로 확정한 만큼 기업은행은 이 방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공공기관 노동 조건 지침 수립 과정에서 정부가 노조를 배제하고 과도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ILO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지침이 공공기관 단체교섭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는데요. 이 같은 ILO 권고를 정부와 기업은행은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문제 개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기업은행 등 공공기관의 경영실적평가에서 총인건비인상률을 평가지표로 활용한다는 점이 꼽힙니다. 정부의 임금인상률 지침 범위 내에서 인건비를 인상했는지를 따지는 것인데요. 기업은행은 별도 임금단체협상 없이 매년 정부 지침보다 낮은 인상률을 채택하면서 해당 평가 항목에서 만점을 받아왔습니다.
 
시중은행에 버금가는 영업 압박에 시달리면서 임금 처우가 낮다는 내부 불만은 국책은행 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집니다. 기업은행은 최근 기업대출 외 부문에서 퇴직연금, 방카슈랑스, 카드, 외환 등의 실적 목표치를 높였는데, 이 중 퇴직연금의 경우 목표치를 두배 가까이 상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소기업자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는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종용·김한결 기자 yong@etomato.com